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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터널을 지나는 청춘들을 다독여주는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좋은 글

  내가 이십대 초반일 때 처음 신경숙의 작품을 접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이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신경숙의 글들이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청춘시절에 소설의 깊이를 알게해 준 그녀가 청춘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읽는 내내 소설의 배경 시대를 종잡을 수 없었으며 그런 이유로 소설의 주인공들과 함께 동시대의 성장통을 앓고 있는 내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상처가 있는 자들은 그 상처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며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나간다. <어디선가..>에 나오는 인물들은 속으로 삭이고 감추고 있던 상처들을 조금씩 내비추면서 가까워지고 서로의 인생에 얽혀들어간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도시를 걸으며 방황하는 정윤, 어린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언니가 발레를 못하게 되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거식증에 걸린 미루는 처음 본 순간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이끌린다. 세상을 향해 문을 걸어닫았던 이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이들의 상처 속에 가려진 또다른 청춘들의 상처. 혼돈스러운 시대를 살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세상을 떠나버린 이들. 이들을 찾아달라는 남은자들의 호소는 끊임없는 전화벨 소리로 잠든 도시를 깨운다. 

  소설속에는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더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시위를 하던 이들도 있고, 이들처럼 절실하진 않지만 그런 시대속에서 함께 휩쓸렸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고독한 이십대를 숨막혀 한 이도 있으며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해 자신의 육체에 한모금의 물도 주지 않는 벌을 가하며 세상을 뜨는 이들도 있다. 서른을 넘기지 못한 이들의 죽음은 단순한 육체의 사멸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의 죽음은 세상과 타협하며 뜨거웠던 시절을 잊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인 동시에 청춘의 상실을 상징하는 듯 하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잊고 사는가. 절실하게 아팠던 만큼 더 많이 잊으려고 애쓰지는 않는가. 소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구 중 하나는 '오늘을 잊지 말자'이다. 자신과 세상을 향해 절절하게 투쟁했던 그 시절, 그 마음, 그 순간을 잊지말자고. 잊으려고, 덮으려고 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곪아 들어갈 뿐이라고 말한다. 미루는 언니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친구인 윤과 명서와 함께 살고 싶어 했으나 그녀의 부모는 미루 언니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그 집을 팔아버린다. 그 결과 미루는 상처를 영원히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버린 채 세상을 뜨고 만다. 잊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기억하는 것이 변화를 위한 발돋움인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깊은 상처를 안고 가지만 <어디선가..>는 청춘이 마냥 어둡고 혼란스럽다고 말하지만은 않는다. 이들이 비틀거리던 새벽녘에 스며들어오는 한줄기 별빛처럼 우리의 어둠은 언젠가 걷히리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인물들은 '언젠가'라는 말을 소설 말미까지 되뇌인다. 기약없이 공허할 수도 있는 이 말은 청춘의 끝없는 터널을 벗어나기위한 몸부림과도 같다. 작가는 이 소설을 새벽 세시에서 아홉시 사이에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고나면 여명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고독감과 함께 동터오는 바닷가에서의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원한 청춘의 터널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내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게 된다.

  

 

덧글

  • 지노 2010/07/03 09:42 #

    저도 그랬는데... 어느 한 시절을 이야기할 때, 하루키와 신경숙 씨를 이야기하곤 했었죠.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애잔하게 담아내는 이야기들이 좋았죠. ^^
  • 초여니 2010/07/03 11:58 #

    저와 비슷한 감동을 받으셨다니 반갑네요. 두작가 모두 섬세함이 돋보여서 더욱 이십대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새로 바뀐 스킨인데 답글등록이 안되서 덧글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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